운명

소개팅의 공식 성공률이 2% 라 한다.

극악무도한 성공률 뒤에는 첫인상의 효과라는 게 있다.

사람이 처음 만나 3초 이내에 느끼는 첫인상이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는 거다.

잘 생기고 예쁘지 않아도 단정하고 깔끔하고 좋은 스타일이 유리하다.

“안녕하세요” 인사 나누는 그 짧은 찰나의 이미지가 생각보다 중요하다.

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남자도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연애를 끝낸 후로 2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나는 여전히 솔로였다.

일이 바빴고, 연애보다 중요한 일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많이 외롭지 않았다.

“너 올해 몇 살이지?”

친한 언니가 뜬금없이 전화를 해 나이를 물었다.

“서른여섯. 갑자기 나이는 왜?”

“나 아는 분이 주변에 괜찮은 아가씨 없냐고 묻는데, 갑자기 네 생각이 딱 나는 거야. 너랑 동갑이네.

회사원은 아니고 아버지 사업하시는 거 같이 한다는데 그 집이 잘 산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서른 중반을 넘어서 남자가 연하도 아니고 동갑을 만나보겠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으니까.

단정하게 세미 캐주얼을 입고 나온 그의 첫인상은 충분히 매력 있었다.

그는 나와 다른 점도 많았고 비슷한 점도 많았는데, 만날수록 느낀 점은 '큰 단점이 없다'라는 거였다.

단점 찾기에 바빴던 내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았다는 건 엄청 대단한 일이었다.

생각이 많아 망테크 탔던 나의 과거 연애들을 떠올렸다.

고민하지 말고 천천히 잘 만나봐야지.

그렇게 몇 번 데이트를 하다 어느 날 함께 극장에 갔다.

키오스크 기계에서 티켓을 뽑는데 생일 쿠폰이 같이 출력되는 게 아닌가.

“생일이었어요?!”

“사실은 다음 주가 생일이에요.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생일이라고 하기에 좀 그래서 말 안 했는데. 이렇게 공개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언제 물어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생일이 언제예요?”

“저요? 전 음력으로 하는데, 올해는 언제더라.”

휴대폰 달력을 보던 그가 갑자기 외마디를 외치며 흥분했다.

“어? 올해 생일이 같은 날짜에요!”

“진짜요?”

“진짜예요, 이거 봐요. 신기하죠?”

“이런 우연이 있을 수도 있네요.”

썸을 타다 보면 기류를 감지하는 능력이 생긴다. 이 썸은 망했다 혹은 조만간 고백 각이다 라는.

단언컨대 이번은 고백 각이었다.

일주일 뒤 생일 당일, 우리는 각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저녁때 만나기로 했다.

해 질 무렵, 집까지 날 데리러 온 그는 처음으로 정장을 입고 꽃다발을 안겨줬다.

“그래서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비밀이에요.”

차를 끌고 도착한 곳은 여의도 63빌딩. 그는 내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설마 했던 그 시나리오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내 생애 이런 고층 럭셔리 레스토랑에서 야경을 바라보며 식사를 하게 될 줄이야.

여기만 해도 감동에 고마워서 어쩔 줄 몰랐는데, 디저트에 작은 반짝이는 선물까지 내밀었다.

“반지를 해주고 싶었는데, 그건 너무 부담스러워 할 거 같아서요. 받아줄래요?”

이건 반칙이지. 내가 선물이랍시고 고른 별다방 카드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백화점에라도 갔었어야 했는데.

“저랑 사귀어 줄래요?”

드라마에나 나오던 장면이 펼쳐지고 있는데, 뭘 더 고민하랴. 못 먹어도 고다.

그는 운명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소개해 주는 만남은 극구 거부했었는데, 이번엔 그냥 나가보자 했다고.

나왔는데 이상형이 나타나서 숨 막힐 뻔했다고.

그런데 생일까지 같은 날이라니 이게 운명이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면서.

불타오르듯 뜨겁지는 않아도 따뜻한 설렘이 있었다. 이것도 사랑이겠다 싶었다.

꽃다발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 그날 , 가족들은 드디어 막내딸이 시집을 가겠다며 환호했다.

“장모님 내년 봄에 좋은 소식 있는 거 아니에요?”

내 연애 소식에 언니와 형부가 더욱 흥분해서 부모님까지 들썩이게 만들었다.

나.. 정말 결혼하나?